영화 소공녀: 집을 포기하고 취향을 지킨다는 것—한국 청년의 생존을 ‘품위의 예산’으로 다시 계산하다

 

영화 소공녀 포스터 - 2018년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2018)는 “집 없이도 산다”는 자극적 구호로 시작하지 않는다.
영화는 미세먼지와 월세, 비정규 노동과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주인공 ‘미소’가 집을 포기하고도 자신의 일상 품위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내는지, 그 회계 과정을 집요하게 기록한다.

담배 한 갑과 위스키 한 잔,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와의 평범한 저녁.
이 사소한 취향들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전세·월세라는 안정의 지표를 내려놓는다.
이 선택은 반사회적 선언이 아니라 자기 존중의 최소치에 대한 합리적 배분이다.
영화는 ‘가난=비루’라는 상투적 등식을 거부하며, ‘취향=허영’이라는 편견을 불식시킨다.

미소의 표정과 동선, 공기의 온도와 소음, 도심의 틈과 계절의 먼지까지 촘촘히 수집해, 삶의 품위가 체면이 아니라 습관과 감각의 문제임을 증명한다.
흥행은 조용했지만, 이 작품은 한국 독립영화가 동시대 청년의 현실을 어떻게 우아하고 단단하게 서사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결정적 좌표로 남는다.

서론: ‘집=존엄’이라는 상식에 대한 반문—주거 불안의 시대에 품위를 호흡으로 바꾸는 법

<소공녀>가 던지는 첫 질문은 단순하다.
“집이 없으면 품위도 없나.”
주인공 미소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며 낮은 임금과 불규칙한 스케줄, 오르는 월세와 미세먼지의 계절을 견딘다.
그는 어느 날 단순한 연산을 한다.
월세와 공과금, 교통비,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소소한 비용들, 그리고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담배, 위스키, 음악, 남자친구의 체온—을 같은 표에 올려놓고 더하고 뺀다.

결과는 명쾌하다.
‘집’이 가장 크고도 가장 노잼인 비용이라는 사실.
미소는 이 비용을 제거한다.
친구들의 집과 지인의 빈방, 일시적 숙박과 작업실의 구석을 떠돌며 그는 ‘거주’를 지우는 대신 ‘체류’를 늘린다.
이 체류는 도피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 취향의 방어다.
사회는 ‘취향’을 종종 사치나 허영으로 분류하지만, 영화는 취향을 ‘호흡의 리듬’으로 재정의한다.

담배와 술은 금연·절주 담론과 충돌하는 상징이지만, 미소에게 그것들은 ‘누구의 일정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을 진정시키는 루틴’이다.
감독은 이 루틴을 미화하지도, 악마화하지도 않는다.
다만 현실의 압력 속에서 개인이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하는 소소한 장치로 배치한다.
이 선택은 비난보다 맥락을 필요로 한다.
임대 시장의 장벽, 가족의 단절, 안정적 직업의 희소성, 도시가 줄 수 있는 위로의 축소 등, 미소의 일상은 ‘집=안정’이라는 공식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환경 위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소공녀>의 서론은 거대한 선언이 아니라 조용한 회계 보고서에 가깝다.
비용과 효용, 체면과 기쁨, 안전과 자유를 같은 단위로 환산하는 일.
그 표에서 미소가 지운 것은 사회가 요구한 안정이고, 남긴 것은 자신이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의식들이다.
카메라는 이 ‘작은 의식’의 물리량—불 붙이는 소리, 위스키의 호박빛, 겨울 공기에 섞이는 입김—을 정밀하게 기록한다.
그 기록이야말로 영화가 주장하는 윤리다.
품위는 넓은 평수나 인증샷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알고 그것을 지키는 습관에 있다는 사실.
불편함은 따른다.
그러나 불편함이 곧 비루는 아니다.
불편함을 감수할 때 오히려 자유가 남는다.
미소는 그 자유로 호흡한다.
느슨하지만 끊기지 않게, 가볍지만 흔들리지 않게.


본론: 품위의 회계—공간·관계·사운드·의복이 만든 ‘생활의 방어선’

첫째, 공간의 재배치.
집을 떠난 순간, 도시 전체가 작은 방의 확장판이 된다.
지하철 플랫폼의 벤치, 친구 집의 소파, 홍대 골목의 창가, 작업실의 바닥.
미소는 고정된 주소 대신 이동하는 정거장들을 자신의 ‘생활 네트워크’로 엮는다.
카메라는 집처럼 꾸미지 않는다.
대신 도시의 모서리와 틈, 창틀의 먼지, 편의점 조명과 가로등의 높이를 정확히 배치해 ‘잠시 살아지는’ 감각을 만든다.

둘째, 관계의 문법.
남자친구 한솔과의 관계는 소유가 아니라 동행에 가깝다.
둘은 서로의 가난을 미화하지 않고, 상대의 취향을 설교하지도 않는다.
사랑은 보증인이 아니라 ‘함께 쉬는 기술’로 번역된다.
친구들과의 만남 또한 도덕적 간섭보다 전시 없는 지지가 기본값이다.
“괜찮아?” 대신 “어디 있어?”가 먼저인 안부, “언제 올래?”가 아니라 “지금 자면 돼”의 초대.
이 말들의 간결함이 관계의 품위를 지킨다.

셋째, 사운드의 질감.
음악은 과장되지 않는다.
레코드 플레이어의 침 튀김, 오래된 앰프의 낮은 허밍, 밤 공기를 가르는 버스의 공회전, 길바닥의 발소리가 음악보다 앞선다.
그 사이로 퍼지는 라이터의 ‘칙’ 소리와 위스키 잔이 부딪히는 맑은 음이 작은 의식의 개시를 알린다.
이 생활음의 층이 바로 미소의 심박수를 정돈한다.

넷째, 운동과 의복.
미소의 코트와 장갑, 커다란 머플러는 단순한 의상이 아니다.
이동 생활의 장비다.
포근함의 두께와 주머니의 위치, 지퍼의 부드러움과 신발 밑창의 마찰이 ‘오늘을 버틸 체력’을 제공한다.
몸이 먼저 안전해야 마음의 품위가 유지된다.

다섯째, 노동의 형태.
미소의 일감은 일시적이고 단발적이다.
수입의 불균형은 계획의 불능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이 불능을 ‘게으름’으로 낙인찍지 않는다.
대신 프리랜서 경제의 비가시적 스트레스—대기시간, 무급 연락, 갑작스런 취소—를 온도와 리듬으로 번역한다.

여섯째, 윤리의 장치.
미소는 타인의 호의를 낭비하지 않는다.
머무르되 흔적을 적게 남기고, 빌리되 고장 내지 않으며, 빚지되 과장해 갚지 않는다.
이 절제는 자존의 다른 이름이다.

일곱째, 과거의 흔적.
미소가 들르는 옛 친구들의 집에는 각자의 ‘정착’ 방식이 있다.
육아의 혼돈, 결혼의 타협, 취업의 피로, 귀향의 체념.
영화는 그들을 심판하지 않는다.
다만 ‘정착=정답’이라는 교과서를 한 장씩 덮어 본다.

여덟째, 유머와 체면.
미소의 표정은 자주 무표정에 가깝지만, 대화에는 건조한 유머가 스며 있다.
자기연민 대신 농담을 택하는 순간, 체면의 무게가 줄고 호흡의 길이가 늘어난다.

아홉째, 프레이밍과 빛.
밤의 도시, 노란 텅스텐, 차가운 LED, 미세먼지로 흐릿한 오후.
빛의 스펙트럼이 감정의 농도를 바꾼다.
특히 가로등 아래 위스키의 호박빛은 ‘집이 없어도 저녁은 있다’는 선언처럼 화면을 데운다.

열째, 반복과 루틴.
담배와 술은 반복된다.
반복은 중독의 신호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나를 나로 돌려놓는 스위치’의 역할을 더 크게 한다.

영화는 이 루틴을 도덕의 법정이 아닌 생활의 실험실에 올려놓고 관찰한다.
결과는 간단하다.
루틴이 무너지면 미소의 하루는 분해된다.
루틴을 지키면, 최소한의 생존 윤곽이 유지된다.


결론: 집 없이도 무너지지 않기—‘품위 예산’의 프로토콜과 재관람 좌표

<소공녀>는 가난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대신 ‘품위’라는 추상어를 지출 항목으로 구체화한다.
실천 가능한 최소 규칙을 정리한다.

첫째, 품위 예산을 세울 것.
월세·식비와 같은 필수 비용과 별개로, ‘나를 유지하는 루틴’의 예산을 분리해 명시하라.
커피든 책이든 담배든 운동이든, 그것이 빠지면 무너지는 것을 먼저 산정하라.
둘째, 이동형 정거장을 확보할 것.
정서적·물리적 쉼터 3곳을 정해두라.
친구의 소파, 자주 가는 술집의 창가, 밤 산책의 벤치처럼 ‘곧바로 체류 가능한 자리’가 삶의 관성을 만든다.
셋째, 관계의 문장을 단순화할 것.
“어디야?” “와.” “잘 자.” 같은 짧은 문장으로 서로를 반복 호출하라.
긴 조언보다 짧은 호출이 버팀목이 된다.
넷째, 장비를 갖출 것.
이불, 머플러, 튼튼한 신발, 라이터처럼 ‘몸의 안전’을 보장하는 소도구는 취향이 아니라 생존 장치다.
다섯째, 노동의 리듬을 시각화할 것.
일감의 유무를 달력과 소리로 표기해 대기 시간을 ‘보이는 시간’으로 만들면, 무형의 불안을 유형의 계획으로 치환할 수 있다.
여섯째, 루틴을 범죄화하지 말 것.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당신의 루틴은 ‘사치’가 아니라 ‘유지비’다.
일곱째, 관람의 좌표.
첫 관람은 이야기, 두 번째는 소리(라이터·유리·도시의 저음), 세 번째는 빛(노란 조도와 차가운 LED의 교대)을 주시하라.
그때 미소의 ‘호흡 지문’이 보인다.

<소공녀>가 히트하지 않았더라도 오래 남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 영화는 ‘정답’을 팔지 않고 ‘호흡법’을 남긴다.
집을 잃어도 품위를 잃지 않는 법, 체면 대신 취향으로 자신을 지키는 법, 사회의 평균값이 아닌 나의 호흡수로 하루를 세는 법.
그래서 이 작은 영화는 커다란 지침이 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어딘가에서 잠시 체류하는 자들이다.
그 체류가 비루함이 아니라 취향이 되도록, 오늘의 예산을 다시 짜 본다.
담담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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